제기동 한옥 골목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한국에는 ‘도시 한옥’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도시 한옥’은 대형 필지를 분할하거나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진행된 뒤 새로 만들어진 주거지에 집단적으로 건설된 한옥이다. 제기동의 도시한옥은 1940년 3월 14일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실시하면서 형성된 지역의 일부로 격자형 가로와 세로로 정형화된 필지로 구획된 택지가 형성된 후 도시형 한옥이 건립되기 시작하여 형성되었다. 제기동 한옥 골목의 도시한옥은 도시 한옥 건설의 대표적인 사례이다(출처: 서울미래유산).

제기동(祭基洞)은 조선조 초기부터 한성부(漢城府) 동부 인창방(仁昌坊)에 속해 있었다. 갑오개혁(1894)때에는 동서(東暑) 인창방 동소문외계(東小門外) 제기리로 불렸고 일제시대 때인 1910년 한성부를 경성부(京城府)로 바꾸고 도성 밖동(洞)을 8면으로 개편, 재기리는 인창면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4월 1일 일제가 동 이름과 구역을 축소 조정할 때 제기리는 성밖이라는 이유로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에 편입되었다가, 1936년 4월 1일 경성부 구역확정에 따라 경성부에 편입되어, 제기동은 일제식 땅이름으로 제기정(祭基町)으로 바뀌었다. 광복 다음해인 1946년 10월1일 일제식 땅이름을 정리할 때 제기정을 현재의 제기동으로 고쳤다.

제기동이란 동 이름은 "제사를 지내는 자리(터)" 라는 의미 에서 비롯되었다. 제기동은 본래 춘분과 추분에 나라의 임금이 직접 행차하시어 풍농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린데서 비롯된 제단(祭壇:先農壇)이 있었다 하여 "제터"또는 "계터" 마을이라 불렀다. 계(제)터 마을을 한자로 뜻빌림(意譯)한 것이 제기동이다(출처: 동대문구청).

한옥 필지의 대부분이 50㎡에서 300㎡ 이내의 중·소규모이며, 격자형 블록 내 4m에서 8m 이내의 도로에 면하여 도시형 한옥이 입지해 있다. 전체 한옥 중 약 53.9%가 1960년대부터 1980년대의 건축물인데, 모든 한옥이 단층 건축물이며, 한옥의 다수가 상업용 한옥(39.1%)과 창고(20.1%)로 활용되고 있다. 서울약령시, 경동시장, 청량리재래시장, 청량리 청과물시장 등이 인접해 있으며, 도시형 한옥과 재래시장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지역으로 보전 가치가 높다(출처: 서울미래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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