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역

지금은 제기동 한솔동의보감 빌딩(구 미도파) 앞에 표지석만 남아있는 ‘성동역’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해 하겠지만, 1970년 이전의 사람들은 아련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장소이다.

성동역은 비록 1971년 10월 서울의 시가지확장 계획에 따라 역이 폐쇄되어 현재에 이르렀지만, 당시 경춘선 시·종착역으로 인해 현재 서울약령시, 경동시장 등이 형성되어 서울 최대 재래시장으로 발돋음할 수 있었다. 경춘선은 예나 지금이나 경관이 좋아 휴양지가 많은 북한강을 끼고 달리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 시작점이었다(출처: 동대문신문).

성동역은 현재 청량리역으로 대체된 경춘선의 출발역이었고, 경춘선은 일제강점기인 1939년 7월 25일에 경춘철도주식회사가 부설한 사설 철도로 광복 후 국철로 편입되었다. 경춘선의 개통을 계기로 성동역은 서울의 동부 관문의 역할을 하였고, 경춘철도주식회사 운영의 중추부였다(출처: 동대문구의 오늘, 과거 그리고 미래와 만나다).

현재 청량리역과 춘천역을 잇는 길이 87.3㎞의 단선인 경춘선은 1939년 7월 25일 사설인 경춘철도주식회사에서 성동역에서 춘천역 사이로 개통됐다. 이후 경춘선 구간 중 성동역에서 성북역 구간이 1971년 폐쇄됐고, 결국 경춘선은 성북역에서 춘천역으로 변경됐다. 또한 열차 이용객의 편의를 위해 시발역을 현재의 청량리역으로 옮겼으며, 종착역도 2005년 9월 30일 경춘선 복선전철공사로 인해 춘천까지 운행했던 열차를 남춘천역까지 운행하는 구간으로 변경됐지만, 성동역은 폐쇄되기 32년간 강원도청이 있는 춘천과 서울을 연결하는 시발역으로 해방전과 해방후 서울과 강원도의 든든한 견인차의 역할을 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온 나라가 암흑으로 변해있을 무렵 지방에 있던 사람들은 서울에 있는 시발역을 중심으로 모이게됐다. 성동역은 경기도 북부 일원과 강원도 일대의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과 임산물 등을 팔기 위해 내린 역. 때문에 이 곳은 자연스럽게 상대적으로 산이 많은 강원도 지방에서 나온 약초와 각종 채소와 경기도 지방의 과일 등을 주로 판매를 하면서 현재와 같은 시장의 모습을 만들게 됐다.

1940년대 성동역에는 한국 최초로 지하철이 생길 수도 있었지만 실행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최초 지하철은 1974년 8월 15일 청량리에서 서울역까지 9.54㎞ 구간이다. 하지만 동아일보는 1939년 6월 1일자 기사를 통해 우리나라의 지하철 계획은 이미 1939년도 일제시대에 앞서 경춘철도주식회사가 제기동, 종로2가, 명동, 서울역 등의 노선으로 1940년 말이면 1차 계획구간(제기동∼동대문) 공사를 마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성동역(제기동)∼경성역(서울역) 구간의 지하철은 경기도청(당시 일제는 수도개념을 없애기 위해 일개 군과 같이 격화했다)에서 사업허가는 났지만 당시가 중일전쟁이었고, 이후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경제난으로 인해 지하철 건설의 꿈을 접고 해방이 되어 물거품이 됐다(출처: 동대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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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동대문구의 교통과 성동역
지금은 청량리역이 유용하지만 옛날에는 성동역이 더 편했습니다. 성동역에서는 교외선도 탈 수 있고 또 원주나 양평 쪽으로 더 갈 수도 있었거든요. 주말되면 MT 같은 걸 많이 갔었지요. ~ Source: 황인명 ~ Creator: 안대진 ~ Date: 2020년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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