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동 후생주택

1950년대 한국 전쟁 직후 정부는 전쟁으로 파괴된 수도 서울을 재건하기 위해 힘을 쏟았다. 한강 다리를 다시 짓고 주택과를 신설하여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전쟁으로 인한 재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한 수용시설과 월동용 간이주택, 그리고 후생주택과 복구농민주택, 수복지구 간이주택으로 총 82,658호를 건설하였다. 이는 이 기간에 건설된 총 216,344호의 주택 중 38.4%에 해당한다(출처: 국가기록원).

후생주택은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의 하나로 일반 서민들이 어렵지 아니하게 구입할 수 있도록 지은 주택이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동대문구 용두동 후생주택은 이 시기에 수많은 공영주택과 함께 건설되어 전쟁에 지친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용두동은 왕산로와 하정로 부근에 위치한 동대문구의 관할법정동이다. 청량리 역세권 및 지하철 1호선과 인접한 교통요충지이며, 다수의 업무용 빌딩이 위치해 유동인구가 많다. 약 3만명이 거주하는 일반 주택지와 청과시장, 서울풍물시장 등 상가지역이 혼재되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왕산로(旺山路)와 하정로(夏亭路) 주변에 신설동과 경계하고 있는 용두동의 동명은 예전에 마을 뒷산의 산세(山勢)가 '용(龍)의 머리'와 같다하여 ‘용머리’ 또는 ‘용두리(龍頭里)’라고 불리었는데 연유한다. 예전 이지역에는 홍릉천, 성북천, 정릉천 등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지나고 있어 물 맛 좋은 곳'으로 이름이 나 있었으며, 개울가에 형성된 ‘홍릉내 빨래터’(전 오스카극장 자리)와 정릉내 빨래터(현 한솔동의보감 건물)는 널리 소문난 빨래터였으며, 왕산로 현 남성공업사 자리에 있었던 ‘찬우물터’의 우물맛은 이가 시릴 정도로 차고 꿀맛 같아서 도성(都城)안으로 들어가는 길손들은 물론 성안의 사람들도 동대문(東大門)을 나와서 꼭 이 물을 마셨다고 한다 (출처: 동대문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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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후생주택 입주식
11월 19일, 동대문 경찰서와 구내유지들이 주동이 되어 동대문구 이문동 산 6번지에 건립한 구호주택 입주식 ~ Creator: KTV국민방송 대한뉴스 ~ Date: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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