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구의 옛 극장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 동대문구에는 오스카극장, 대왕극장, 답십리극장 등 여러 극장이 개관한다. 이는 해방과 6.25를 겪으면서 가난과 절망에 지친 사람들에게 간절한 희망과 영화의 대중적인 보급에 힘입어 극장이 함께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1990년도에 들어서면서 재개발과 새로운 시설의 영화관들이 들어서면서부터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시설 노후로 대부분의 극장은 문 닫게 된다.

다양한 영화 중 한 편을 골라보며 쇼핑을 즐길 수 있는 멀티플렉스 공간이 되기 이전, 극장은 영화 상영과 강연회, 기념식, 정부 행사, 공연 등이 함께 벌어지는 공간이었다. 극장은 한국영화가 급속하게 성장한 1956년 이후에서야 안정적인 영화 수급을 통해 영화전문관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는데, 최신식 영사기와 스크린, 음향시설을 도입했고 관객들의 편안한 관람을 위해 좌석을 지정하고 휴게실을 마련했으며 필요에 따라 건물을 신축 또는 개축하기까지 했다. 단순한 영화 구경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의 변모는 지역적 환경과 관객의 취향에 따른 외국영화전용관과 한국영화전용관의 개설로 이어졌다. 또한 극장의 종류도 개봉관과 2번관, 3번관 등으로 세분화되면서 더욱 다양해진 관객층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출처: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

개봉관은 영화를 가장 먼저 상영하는 극장이다. 개봉관에서 최초로 영화를 상영하고 나면 재개봉관, 즉 2번관은 개봉관에서 상영한 영화 필름을 받아서 상영했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변두리극장은 3번관이라 불렀다. 3번관은 세번째로 상영하기 때문에 삼류극장이라고도 불렸다. 극장 요금은 개봉관이 가장 비쌌고, 극장의 등급이 2등급, 3등급으로 낮아질수록 가격이 저렴했다(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오스카극장은 많은 유동인구가 있는 청량리 지역의 대표적인 영화관이다. 2번관으로 시작하였지만 영화 ‘백 투 더 퓨처’를 통해 개봉관으로 부상하였으며, 지역 내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과 추억을 남긴 공간이다.

대왕극장은 1960년대 청량리 대왕코너의 소극장이었던 신도극장으로 시작했다. 한국의 초창기 극장이었던 만큼 설립 당시 시설은 매우 열악했지만, 관객은 어느 정도 찾아왔다. 그 후 ‘대왕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극장 영업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영업 허가를 받는 일은 쉽지 않았다. 1년 반의 기다림 뒤, 대왕극장은 ‘개봉관’ 급으로 영업 허가를 받았다. 허나 개봉관은 당시 극장 등급 중 가장 높은 등급으로 입장료가 비싸 관객이 많이 찾지 않았다. 그리하여 대왕극장은 2번관으로 등급을 낮추어 영업하기 시작했고, 점차 관객이 늘어나 전국 1, 2위의 극장으로 거듭났다. 대왕극장은 당시 인기 프로를 대부분 상영했고, 종종 남진과 나훈아 등 인기있는 가수들의 공연도 열렸다. 1972년을 시작으로 대왕코너에 화재가 여러 차례 발생하면서 대왕코너의 폐쇄와 함께 대왕극장은 문을 닫게 되었다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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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입장권 복권 추첨
2월분 극장 입장권 복권을 추첨. -서울 사세청에서 2월분 극장 입장권 복권을 여배우 도금봉씨에 의해 추첨함. -극장 입장권 당첨 번호표 현황판 모습. -당첨금은 1등 20만환, 2등 5만환, 3등 1만환이 지급됨. -복권을 추첨하는 도금봉씨의 모습. ~ Creator: KTV국민방송 대한뉴스 ~ Date: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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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화가의 극장화가 입문 이야기
작가 선생님 만나러 가가지고 못 만나고서 오는 길에 청량리에서 시대극장, 바로 옆에 도로변 가에 긴 문이 열려있는데 거기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더라고요. 간판을. ~ Source: 김영준 ~ Creator: 안대진 ~ Date: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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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일대 극장 설명
우선 오스카극장이 제일 괜찮았아요 그때. 오스카, 고 바로 옆에 시대. 그리고 사거리에 동일. 그리고 롯데백화점 옆에 거기가 청량리역 그쪽에 대왕. 그리고 저쪽 신설동 쪽으로 가면 동보. 고 길 건너 쪽에 노벨. 이 동대문에 극장이 되게 많았어요. 답십리도 동대문에 들어가나? 답십리. ~ Source: 김영준 ~ Creator: 안대진 ~ Date: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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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화가들의 그림 품앗이
근무한 데는 오스카, 시대, 동보 그렇게 근무를 했었죠. 그런데 요 근래 있으면은 그리면 왔다갔다하면은 영화가 갑자기 펑크나요. 뭐 갑자기 손님이 안들어와서 갑자기 짤린다거나 그러면 가서 도와주고. 간판도 같이 달아주고. 간판 달 때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니까. ~ Source: 김영준 ~ Creator: 안대진 ~ Date: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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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극장에서 한 일과 극장화가의 계급
장내에서 붙이는 장내 간판 이라고 있어요 쪼끄만 거. 고런 거나 조금 하고. 고런 거 좀 어느정도 일 년 하면은 저걸 시켜요. 백 칠. 인제 그 부장님 그릴 수 있게 뒤에 백 그림 그려주고. ~ Source: 김영준 ~ Creator: 안대진 ~ Date: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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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화가들의 꿈
우리 꿈은 재개봉관 미술부장이 아니고 개봉관. 더 나가서 종로. 개봉관이 종로 위에 하나 더 있었어요. 개봉관 단성사나 피카디리, 서울. 이런 데 이제 그게 가장 바라는 꿈이었죠. 거기에 미술부장. ~ Source: 김영준 ~ Creator: 안대진 ~ Date: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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