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산로

1895년 가을, 일본 세력의 경복궁 습격으로 명성황후가 살해된다. 경상도 선산에서 학문에 전념하던 왕산 허위는 이 사건에 분노하여 전국 곳곳에 창의문(倡義文)을 써 붙여 의병을 모으기 시작하여 을미의병의 한 주축을 이루었다. 금산(현재의 김해)에서 이기찬과 함께 삼백여명의 의병을 모은 허위는 금산의 관군 무기고를 습격하여 금산을 점령하고 한양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삼백명의 급조된 의병으로 천 이백명의 관군을 맞아 싸우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