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코너

해방 이후 청량리역은 전면의 전차 정류소가 자리했고, 배후에는 강원도에서 생산된 석탄이 모여드는 대규모 집하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이른바 ‘불량주택’이 난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1960년대 들어서 청량리에도 변화의 조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1963년 서울시는 시내 주요 간선도로 주변의 ‘건물개량지구’를 대상으로 종합적인 시가지 건축을 꾀하고자 했다. 불량건설 개량지구 중 청량리역이 위치한 청량리동도 포함되었다.

1968년 8월 15일 청량상가는 연건평 1만 2천평에 엘리베이터·에스컬레이터·자동문 등의 ‘현대식’ 편의 시설을 갖추고 완공을 알렸다. 청량상가 대왕코너의 완공은 불량건물로 뒤덮인 청량리의 변화와 청량리역 주변의 상업화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개장 당시 대왕코너는 망우리·답십리·제기동 등의 주택밀집지역에 가까이 자리하고 있는 종합상가로서 발전 가능성을 높이 평가받았다. 이후 대왕코너는 청량리 일대를 대표하는 대규모 종합상가로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1974년 4월 지하철 종로선이 개통되면서 청량리에 지하 청량리역이 완공되었다. 대왕코너는 지하철 개통이라는 호재를 맞아서 민자 2억원을 들여서 청량리역과 상가 건물을 직접 잇는 지하도 공사를 벌였다. 지하철 정류장에서 대왕코너 지하층으로 연결되는 통로 2개를 만들고 통로 좌우에 지하상가를 두는 등 지하철과의 연계를 높이기 위한 공사를 진행했다. 대왕코너는 지하철 개통에 따라서 고객이 개통 전에 비해서 두 배 정도 올라서 하루에 20에서 30만 정도의 방문객 수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왕코너는 청량리를 대표하는 상가였지만, 세상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72년부터 1975년까지 5년도 안 되는 사이에 연이어 발생한 3차례의 화재 때문이었다. 대왕코너의 첫 화재는 1972년 8월 5일 발생했다. 대왕코너 1층에 자리한 대왕분식센터에서 프로판가스가 폭발해서 1,2층은 전소하고 나머지 층에도 불이 번져서 6명이 사망하고 8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재산피해는 약 3억여원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6층에 자리한 학원 수강생으로 연기 때문에 미처 탈출하지 못하고 같은 층 화장실 구석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 화재는 1971년 12월 서울 충무로의 대연각호텔에서 발생한 대형화재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발생한 사고였기 때문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했다. 그리고 평소 화재에 취약한 대왕코너의 내부구조와 소방시설 미비에 따른 비난이 이어졌다. 또한 화재수습 과정에서 대왕코너 건물이 5층으로 허가를 받고 무단으로 7층까지 건축한 불법건물임이 밝혀져서 건물 인허가와 준공검사를 담당한 서울시 관계공무원에 대한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대왕코너는 1972년 9월까지 복구공사를 마치고, 각층마다 방화셔터·스프링클러 등의 안전장치를 갖추는 동시에 화재의 원인이었던 가스시설은 건물 바깥에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 안전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서 새 건물은 ’방화모범건물’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밝히기도 했다.

1974년 지하철과 연결된 ‘백화점의 탄생’을 알리던 대왕코너에 다시 한 번 화재가 발생했다. 1974년 11월 3일 새벽 3시경 대왕코너 6층에 있던 브라운 호텔 비상계단 조명등에서 불이 났다. 불은 가연성이 높은 내부장식을 따라서 삽시간에 번졌다. 이로 인해서 호텔 투숙객 및 6층 타임나이트클럽 손님 등 88명이 숨졌는데, 72명의 사망자가 나이트클럽 내부에서 발생할 정도로 피해가 컸다. 이와 같이 나이트클럽에서 대규모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유는 출입구가 회전문이어서 대피가 쉽지 않았고, 종업원들이 계산을 이유로 출입문을 막아서서 초기 대피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타임나이트클럽은 새벽 2시 이후에 영업을 할 수 없으나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매일 밤 철야영업을 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대왕코너 사장 김호진을 비롯해서 12명이 구속되고, 동대문구청장 · 청량리경찰서장 · 동대문보건소장 · 성동소방서장 등이 직위 해제됐다.

1974년 대형화재 후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75년 10월 13일 다시 화재가 발생했다. 12일 밤 2층에서 발화한 불은 3,4층으로 옮겨 붙었고, 6시간 가까이 지난 후에야 화재가 진압됐다. 이 화재로 인해서 4층의 미용학원에서 잠자던 학원생 3명이 연기에 질식해서 사망했고, 1억 5천만원의 재산 피해를 냈다.

이와 같이 대왕코너는 3차례의 화재로 인하여 100여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냈다. 언론에서는 대왕코너를 ‘화마의 집’, ‘화재대왕’이라고 비판하면서 특히 1975년 8월 소방시설개수명령을 어겨 검찰에 고발되는 등 화재를 대비한 초지가 미흡했음을 꼬집었다.

1975년 11월 13일 서울시는 3차례의 대화재로 붕괴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대왕코너에 전면사용금지령을 내렸다. 대왕코너 건물 자체는 재사용이 결정됐지만, 대왕코너는 당시 채권은행인 조흥은행에 의해서 1975년 11월 21일 경매 처분이 결정되면서 개관한지 10년도 못돼 문을 닫는 운명을 맞이하게 됐다.

대왕코너의 재개장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러 번 소유권이 바뀌던 대왕코너 건물은 원창실업에 소유권이 넘어갔다. 원창실업은 총 110억원을 투입해서 대왕코너의 보수공사에 나섰다. 이를 통해서 400여개의 점포를 갖춘 상가와 200여개의 객실을 갖춘 호텔이 동시에 영업하는 형태를 갖추게 됐고, 1979년 9월 15일 추석 성수기를 앞둔 시점에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원창실업은 새로 개수한 쇼핑센터의 이름을 ‘맘모스’라 명명하고 영업을 개시했다. 맘모스쇼핑센터는 인수 당시 계획대로 지하 1층에서 3층까지는 상가로 활용하고 나머지 층은 관광호텔로 구성되어 있었다.

맘모스쇼핑센터는 과거 대왕코너의 부정적인 인식을 일신하며 새롭게 개장했지만, 개장 직후 불어 닥친 경기침체로 인하여 영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당시 쇼핑센터에 입주한 임대상인들은 점포를 처분하고 싶어도 구매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임대 당시 평당 100만원을 지불했던 ‘프리미엄’을 받을 수도 없는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맘모스백화점 측은 1980년 9월에 들어서 임대료를 최고 120%까지 올렸고, 3층 예식장 조성에 따른 임대계약 해약 등을 강요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이에 대해서 맘모스백화점 입주상인들은 일제히 가게 문을 닫는 등 점포 임대를 둘러싼 분쟁은 백화점 개점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재벌의 백화점 진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와 함께 지하철로 인해서 서울 외곽지역이 급속히 개발되고 역 주변으로 대형쇼핑센터가 들어서면서 서울 도심부에 몰려있던 상권이 지하철 노선에 따라 분산되기 시작했다. 청량리역 앞에도 맘모스백화점과 미도파백화점이 들어서서 경동시장 등과 함께 서울 동부상권을 형성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 서울의 백화점 상권을 중심으로 시장 쟁탈전이 가속화됐다. 당시 경영난에 빠져있던 맘모스백화점의 소유를 둘러싼 여러 가지 소문이 돌면서 청량리역 상권도 들썩이기 시작했다.

1993년 7월에 들어서 유통시장 3단계 개방에 따라서 외국유통업체들의 진출이 가시화되면서 국내 백화점 업계의 점포 증설이 다시 활발해졌다. 롯데는 맘모스백화점을 위탁경영하기로 결정하고, 9월 말부터 롯데백화점 맘모스점으로 이름을 정하고 영업을 개시하고자 했다. 그러나 개점은 이듬해인 1994년 3월에 이루어졌고, 롯데가 연매출액의 0.5%를 ㈜맘모스 측에 로열티로 지급하는 임대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후 롯데백화점 맘모스점은 롯데백화점 청량리점이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롯데백화점 청량리점은 개장 후 1년간 1,100만 명의 고객이 1,600억 원의 상품을 구매해서 청량리 지역을 대표하는 백화점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1996년 2월 롯데백화점 청량리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백화점 4층 창고에서 불이 났고, 5층에서 7층으로 급속히 번졌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2억 5천만 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이 화재는 1970년 대왕코너의 악몽을 떠오르게 했고, 삼풍백화점 참사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불법 용도변경 중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점이 문제가 되어 백화점 관계자와 동대문구청 공무원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롯데백화점 청량리점은 화재 복구와 소방점검 및 구조안전진단 등의 과정을 거쳐 화재가 발생한지 6개월 만인 1996년 8월에 다시 영업을 재개했다.

2010년 8월 20일 롯데백화점 청량리점이 청량리 민자역사로 이전하면서 기존의 백화점 청량리점은 롯데청량리프라자로 명칭을 변경해서 영업을 계속했다(출처: 서울역사박물관).

2016년 12월 31일 영업을 종료한 청량리 롯데플라자는 2017년 2월 청량리 제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에 포함되며 철거되었고, 2021년까지 40층 규모의 주상복합 아파트와 호텔, 오피스텔 등을 갖춘 랜드마크 타워가 들어설 예정으로 서울 동북지역의 새로운 상권으로 주목받고 있다 (출처: 동대문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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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량리 상가아파트 대왕코너 화재
서울 청량리 상가아파트 대왕코너 화재. -프로판 가스 폭발로 화재 발생. -진화작업, 헬리콥터 사다리 이용으로 인명구조 ~ Creator: KTV국민방송 대한뉴스 ~ Date: 197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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