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릉 부흥주택

세종대왕 기념공원과 한신아파트 사이에 낡고 오래된 주택가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주변지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상당히 이채롭다. 이곳이 홍릉 부흥주택으로 격동의 세월을 거치면서도 50년 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어 60년대의 향수를 느껴볼 수 있다(출처: 동대문구의 오늘, 과거 그리고 미래와 만나다).

홍릉 부흥주택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7년 원조물자를 받아 지어진 대규모 주거단지이다. 이곳은 청량리의 근대 역사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근대 주거사에도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홍릉 부흥주택 단지는 지어질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그 위에 증개축으로 도시건축적 형상이 변해왔으며, 여전히 변해가고 있다. 이렇듯 약 60년 역사의 층위와 함께 현재 주민들의 일상을 담고 있다.

부흥주택은 홍릉 정문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1950년대 만들어진 대표적인 연립형 주거단지로, 현재까지 초창기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주로 청량리 부흥주택으로 불리지만 지리적 위치나 인식적으로 청량리보다 홍릉에 가깝고, 부흥주택 인근 상권 · 건물명 등에서도 홍릉을 더 많이 사용한다(출처: 서울역사박물관).

홍릉 부흥주택의 동쪽은 홍릉근린공원과, 세종대왕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서쪽은 한신아파트가 서있다. 그리고 한신아파트 뒤로, 정릉천이 흐르고 정릉천 건너에는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한 고려대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부흥주택이 건설되기 전 이 일대는 창덕궁 소유였다. 그러나 1934년 조선총독부는 조선시가지계획령을 제정한 뒤 1940년 3월 12일 홍릉과 대상지를 포함한 이 일대 855,000㎡을 청량 대공원으로 지정하였고, 1941년 3월 25일 풍치지구로 지정하여 이 일대 일부를 점유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서울시의 1/4에 해당하는 시가지가 파괴되었고, 이에 정부는 1955년부터 대한주택영단, 상업은행 및 서울시를 비롯하여 여러 공공단체, 금융기관, 구호단체 등을 통해 주택을 지어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들 주택은 형태 및 자금의 출처 그리고 목적별로 부흥주택, 국민주택, 재건주택, 희망주택, 외인주택 등 다양한 이름으로 건설되었다. 부흥주택은 산업은행국채발행으로 조성된 기금에 의하여 건설된 주택으로 1955년 서울시에 의해서 지어진 시영주택과 1957년 조선주택영단에서 지은 영단주택이 공존하는 주택지이다.

서울시는 1955년 6월 7일 주택건설을 위해 청량공원 중 홍릉서편 132,000㎡를 해제했다. 또한 1956년까지 공원에서 해제시킨 이 일대 토지를 매입하고당시 “田”이었던 형질을 1958년 주택지 조성을 위하여 “垈”로 지목을 변경했다. 그 후 서울시는 1961년과 1962년 사이에 다시 대한주택영단에 이 일대의 토지를 매각했다. 이로써 주택지 조성을 위한 토지조성사업을 마치게 되고 1955년에 서울시는 204호의 시영주택을, 1957년에 대한주택영단은 283호의 영단주택을 건설하여 공급했다. 이렇게 건설된 홍릉 부흥주택은 전국적으로 시행된 국민주택사업의 원형이 되었다(출처: 동대문구의 오늘, 과거 그리고 미래와 만나다).

부흥주택은 공간적으로 지어질 당시 내부에 있던 화장실이 위생과 관념적 문제로 외부로 이전되고, 담장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외부공간을 내부공간으로 변용하고, 1층은 주인집, 2층은 세입자가 사용하는 공간으로 분화해가는 과정을 거치며 현재의 모습으로 변해왔다. 이는 거실문화의 확산, 부엌과 난방방식의 변화, 지리환경의 변화에 따른 전월세 변화 등의 인문환경의 변화와 함께 진행된 변화이다.

부흥주택은 크게 영단주택과 시영주택으로 나누어져 있다. 둘 사이의 구조적 차이는 없다. 지붕 트러스 구조의 미세한 차이와 규모의 차이 정도일 뿐이다. 부흥주택 단지는 남북으로 형성된 대로를 중심으로 동서 방향의 4호 연립으로 길게 만들어졌다. 현재는 연립동 사이의 길까지 확장 · 증축하면서 8호 연립으로 형성되어 있다.

홍릉 부흥주택은 당시에 만들어진 단지로는 규모면에서나, 건축물의 상태면에서 매우 잘 보존되어 있는 근대 대규모 주거단지로서 기록 · 보존적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다(출처: 서울역사박물관). 1950년대 후반에 건설된 대표적인 주거지 유형의 하나인 홍릉 부흥주택은 당시의 많은 주거지들이 사회적, 문화적 영향으로 형성되어 변화되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는 근대 주거지 개념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과도기적 시점에 건설된 초기 집합주택으로 우리 주거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1950년대 후반의 가장 시급한 사회문제였던 전쟁복구와 주택부족 문제의 해결이라는 시대 상황을 담고 있다(출처: 동대문구의 오늘, 과거 그리고 미래와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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