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전교

현재 서울시립대학교가 위치한 전농동에서 정신병원이 있는 청량리 쪽으로 넘어 가려면 시멘트다리를 넘어야 하는데 이 다리를 가리켜 '떡전교' 또는 '떡전다리'라 부른다. 예전에 그 주위에 떡을 만들어 파는 떡집이 많아 사람들이 그곳을 떡점(餠店)거리, 또는 떡전거리라 한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지금은 중앙선, 경춘선, 경원선으로 가는 기차와 전철이 떡전다리 밑을 지나지만 현대적인 교통수단이 발달하기 휠씬 전인 예전에는 사람들이 주로 걸어다녔고 이곳은 한양으로 통하는 길목이었다. 그 시절 경기북부나 강원도, 그리고 멀리 함경도에서 말을 타거나 걸어서 한양으로 오려면 반드시 이 길목을 거쳐 가야 했고 도성안에서 약 시오리 길인 이곳에 이르러서는 배고픔도 달래고 옷매무새도 고치면서 잠시 자리를 잡고 쉬었다 가거나 하루 밤을 묵어가기도 했다.

기록에 의하면 중앙선 철길이 놓이기 전에 경원선이 개통되고 청량리역이 영업을 시작했을 때 청량리 일대에는 겨우 270여 호의 가옥이 있었다고 한다. 경원선은 원래 용산역에서 의정부를 거쳐 철원, 석왕사, 원산으로 이어지나 청량리에서 의정부로 가는 철길이 생기고 나서는 용산역보다 오히려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는 승객이 훨씬 많았다 한다.


떡전교, 떡전거리에는 한 떡장수와 얽힌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당시 떡전거리에 '용인댁'이라 불리는 지혜로운 떡장수 아주머니가 있었다. 아마도 그 아주머니 친정이 경기도 용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용인댁은 '전농'이라 부르는 임금님 소유 논밭이 있는 창마을(현재 전농4동) 배봉산 아래 초가집에 살고 있었다. 봄이면 왕가 소유 밭이나 논둑을 쏘다니며 파릇파릇 돋아나는 쑥을 뜯어다가 쑥떡을 만들거나 배봉산에 올라가 물이 오른 소나무 껍질을 벗겨다가 송기떡을 만들어 떡전거리에 내다 팔았다.
그녀의 손맛이 유별나서 그랬을 테지만 떡맛이 좋아 남들 떡광주리에는 만들어 온 떡이 아직도 반 광주리나 남았어도 그녀는 일찌감치 떡을 다 팔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에게 말했다.
"손님들이 그 집 떡만 찾는데 떡을 좀 많이 만들어 오면 돈을 좀 더 벌 거 아니오?"
하지만 용인댁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광주리에 담아 내 머리에 이고 올 정도면 되지요. 나는 이것만 팔아도 우리 세 식구 끼니 걱정은 없으니까요."
"그런 마음씨로 살다간 부자 되기는 틀렸소."하고 비아냥거리면
"내 떡만 팔리면 남의 떡은 언제 팔리나? 같이 떡을 팔아서 벌어먹고 사는데 남 생각도 해야지요."
참으로 마음씀씀이가 착한 아주머니였다.
그녀의 남편은 몇 해 전에 경원선 철길을 놓는데 노동일을 하러 갔다가 산에서 큰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크게 다쳐서 병석에 누워 있었다. 어느 가을날 그녀는 겨우 네 살 먹은 꼬맹이 아들을 데리고 마을 뒤편에 있는 배봉산에 올랐다.
십리 길에 논이 펼쳐져 있어 답십리라 불렸다는 넓은 벌이 한눈에 들어오고 저만큼 내려다 보이는 전농 논에서는 농부들이 한창 추수를 하고 있었다.
"저 곡식은 곧 우리 마을 창마을에 있는 왕실 창고에 보관했다가 대궐로 가져가겠지.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도 쓰고 상감께서도 저 곡식을 잡수신다 했었지. 우리 그이도 몸만 다치지 않았으면 지금쯤 전농에 나가 일을 하고 쌀이나 보리쌀을 품삯으로 받아 올텐데…"
곁에 서 있던 네 살짜리 꼬맹이가 혼자서 산을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아주머니는 기겁을 했다.
"얘야! 거기 섰어. 위험해"
그러나 꼬맹이는 들은 척도 않고 산을 내려가는 것이었다.
"안돼. 그러다가 넘어진다. 엄마 손을 잡고 내려가야지."
그녀는 부리나케 아이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아이는 도리질을 했다.
"아니야. 나 혼자 내려갈 수 있어. 엄마는 내 뒤를 따라오기만 하면 돼."
아마도 아이는 엄마 도움 없이도 저 혼자 산을 내려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엄마로서는 큰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저러다가 만약에 아이가 넘어져서 산에서 굴러 떨어진다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가뜩이나 남편마저 몸져 누워있는데 아이까지 다쳐 누워있는 걸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하였다.
그녀는 그만 가던 걸음을 멈추고 산비탈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엄마 왜 그래? 엄마 다쳤어?"
아이가 놀라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니."
"그런데 엄마 왜 그래? 왜 안 내려와?"
"엄만 무서워서 도저히 혼자서는 산을 못 내려갈 것 같구나."
"무섭긴 이딴 게 뭐가 무서워?"
아이는 엄마 속도 모르고 큰소리를 쳤다.
"그래도 엄마는 무섭구나. 네가 엄마 손을 잡고 저 밑까지 나를 데려다 주어야 집에 가지 안 그러면 엄마는 못 갈 것 같구나."
그제서야 아이는 엄마에게로 왔다.
"엄마, 무서우면 내 손을 잡아. 내가 엄마를 저 밑까지 데려다 줄게."

결국 그렇게 해서 엄마는 아이 손을 잡고 미끄러운 산을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아이는 자기가 엄마를 위험에서 구해준 것처럼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창마을 지혜로운 떡장수 아주머니가 자기 아들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짜낸 지혜였다(출처: 동대문구 문화관광).

Images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