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풍물시장

서울풍물시장은 이전에는 ‘황학동(黃鶴洞) 벼룩시장’이라고 불렸던 바로 그 시장이다. ‘황학동’이라는 이름은 과거 논밭이었던 이곳에 황학이 날아와 새끼를 치고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청계천과 함께 하면서 일제강점기부터 빈민 계층의 거주와 생계 유지를 위해 형성되었던 이 시장은 장소가 지닌 상징적·역사적 의미에 따라 명칭도 다양했다. 전국을 벼룩 뛰듯 돌아다니며 희귀한 물건을 모아온다거나 물건에서 벼룩이 금방이라도 기어나올 것 같다는 의미에서 ‘벼룩시장’, 오래되고 망가진 물건이라도 감쪽같이 새것으로 된다고 해서 ‘도깨비시장’, 개미처럼 열심히 일한다 하여 ‘개미시장’, 각종 고물을 취급해서 ‘고물시장’, 없는 것 빼고 다 있다고 해서 ‘만물시장’, 구식이 되어버린 물건이 마지막으로 오는 곳이라 하여 ‘마지막 시장’ 등이 그것이다.

황학동시장은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각 가정에서 쏟아져 나온 고서화·도자기 등을 매매하는 장소로 출발했다고 한다. 1973년 청계천 복개 공사가 완료된 후 인근의 삼일 아파트를 중심으로 중고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수집된 물건 중에서는 종종 진품도 나왔다. 이 소문에 골동품상들이 몰려들었고 수집가들도 따라서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황학동 도깨비시장은 한때 130여 개의 골동품상이 밀집하여 골동품 거리로서 면모를 과시했다. 이곳에는 “여기 없으면 대한민국에 없다”고 할 정도로 시간의 흔적이 묻어있는 온갖 물건들이 구비되어 있다.

그런데 1986년 86아시안게임이 진행되면서 시장은 침체 위기를 맞는다. 정부에서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장안평에 골동품상가를 설치하면서 황학동 골동품 가게들을 대거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이때 최고 130여 곳에 달하던 골동품 가게의 수가 20여 곳 안팎으로 대폭 줄어들면서 골동품 상권도 소실되어 버렸다.

그러나 1997년 11월 우리나라가 경제 위기에 처하여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받게 되자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운동’이 일어나고 가격이 저렴한 중고품 시장이 다시 각광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중고품을 취급하는 황학동시장도 급성장하였다. 1,000여 개에 달하던 기존의 점포 이외에 새로이 또 1,000여 개의 노점이 몰려들어 1km가 넘는 긴 행렬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실수요에 비해 점포수가 너무 빨리 불어나 실제 매출은 줄어드는 현상도 나타났다.

황학동시장은 중고품 유통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관광지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특히 인접한 동대문시장이 현대화로 인해 대규모 상업지구로 변한 것에 비해 중고품 거래라는 특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2003년 7월 청계고가도로 철거가 시작되면서 황학동시장은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서울시는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주변의 노점상들을 전부 철거하였고, 황학동시장의 노점상들 또한 철거 대상이 되었다. 당시 서울시는 2004년 1월 동대문운동장 안에 황학동시장을 본뜬 풍물시장(동대문운동장 풍물벼룩시장)을 개장하고 노점상들을 흡수하였다. 이에 따라 황학동시장의 명물이었던 노점상들이 빠져나가게 되면서 예전의 만물시장·벼룩시장으로서의 모습은 찾기 어렵게 되었다.

한편 동대문운동장 풍물벼룩시장은 2006년 서울시가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을 발표하면서 많은 논의를 거쳐 시유지인 구 신설동 옛 숭인여중 부지에 ‘풍물벼룩마켓’을 조성하여 다시 이주하기로 결정되었다. 이리하여 마침내 2008년 4월 26일 새로이 개장하게 된 시장이 서울풍물시장이다. 수많은 인고의 시간을 거쳐 태어난 서울풍물시장은 오랜 세월 우리 국민들이 함께 일구어낸 시장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출처: 동대문구의 오늘, 과거 그리고 미래와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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