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이문동 연탄공장

1967년 초, 정부는 서울 시내 주택가 연탄공장을 회사별로 통폐합한 후 새로 동북부지역에 대규모 연탄산업단지를 조성하도록 하는 대통령 지시를 발표했다. 정부가 지정한 곳은 동대문구 이문동 중랑천변 제방 약 10만 평(33만 580㎡) 부지였다. 신설 연탄산업단지에는 대규모 저탄장을 설치하도록 허가함으로써 모든 연탄공장의 숙원이었던 저탄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생산시설은 각 기업이 자체적으로 부지를 구입해 설치하도록 조치했다. 이문연탄산업단지로 불린 연탄산업단지에는 삼천리를 비롯해 한선, 한일, 동원, 칠표, 정원, 태양 7개 회사가 입주하게 되었다.

삼천리는 정부가 새로운 연탄산업단지로 지정한 동대문구 이문3동 중랑천변 제방에 무허가 판잣집 15채와 인근 전잡을 매입하는 등 약 1만 평의 대규모 부지를 확보했다. 1967년 5월 저탄시설을 건설하고, 원탄상하차용 이동식 컨베이어 2대를 설치해 원탄 운반의 기계화를 이루었다.

동대문구 이문3동 22의 2번지에 자리를 잡아 건설 착수에 들어간 삼천리 연탄공장은 1968년 1월 1일, 마침내 준공하여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준공 당시 이문동 삼천리 연탄공장은 8대의 윤전기를 통해 연간 약 10만 톤 규모의 생산능력과 30만톤 규모의 저탄능력을 갖추는 등 국내 최대 규모의 시설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연탄공장이었다.

삼천리는 이에 그치지 않고 1968년 7월 최초로 중탄윤전기를 설치한 데 이어 1969년에는 7대의 윤전기를 증설했으며, 1970년 4월 최초로 대탄윤전기를 설치하는 등 추가로 10대의 윤전기를 증설했다.

이에 따라 생산량도 큰 폭으로 증가하여 이문공장은 가동 첫해인 1968년 11만 톤을 기록하며 삼천리 전체 생산량의 25%를 차지했고, 1970년에는 삼천리 전체 생산량의 48%를 담당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서울시민이 하루에 사용한 연탄은 800만~1,000만장이었는데, 이문동 삼천리 연탄공장에서만 하루에 200만장을 생산했다.

특히 이문공장은 연탄기업 중 가장 큰 공장 부지를 확보한 점, 공해문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게 된 점, 향후 시설 증설이 가능한 점, 소규모 공장을 통합한 대규모 공장으로서 대량생산체제를 갖추게 된 점, 원탄 저탄에서부터 생산과 출하에 이르기까지 생산 공정의 일원화를 기할 수 있게 된 점 등 다양한 장점을 갖고 있었다.

하여 이문공장을 본격 가동한 이후 삼천리는 서울연탄시장 점유율을 매년 3~5%씩 확대해나갔다. 이문공장 준공은 새로운 기간공장 체제를 갖추는 계기로서, 삼천리 도약의 역사를 여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1955년 창립 이후 연탄사업을 지속 영위해 오던 삼천리는 2002년 1월 31일, 47년동안 이어진 삼천리연탄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고, 그동안 같은 공장에서 오래도록 근무했던 임직원에게 이문공장의 삼천리 소유 부지를 양도하고, 연탄 사업을 승계했다. 삼천리와 함께했던 직원들에게 생활의 터전을 제공하는 동시에, 수많은 시민들에게 따뜻한 겨울을 보내게 했던 정신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문공장 직원들은 2002년 1월 설립한 ‘삼천리E&E’의 일원으로 연탄사업을 승계했으며, 이문공장은 현재까지 서울의 유일한 연탄공장으로 남아 연탄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삼천리(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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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연탄 사용 관련 뉴스에 나온 이문동 연탄공장의 모습
(1분 57초~2분 35초) 에너지 절약 운동에 따라서 연탄의 수요가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충분한 연료 대책을 마련해서 연탄 생산을 크게 늘렸는데, 실제로 새해 3월까지 공급할 수 있는 것이 730만 톤이나 돼서 필요한 양 570만 톤보다 160만 톤이나 남아도는 상태입니다. 여유가 있다고 해서 일부 가정에서 한꺼번에 많이 들여놓기 때문에 연탄 품귀현상이 빚어집니다. 이런 행위는 그만큼 이웃을 괴롭히고 남을 고생시키는 일입니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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