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우원 터

영우원은 조선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이다. 1762년(영조 38년) 윤 5월 13일(양력 7월 4일)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는 8일째인 윤 5월 21일(양력 7월 12일) 27세로 사망했다. 영조는 시호를 사도, 묘호를 수은으로 내리고 양주군 배봉산 언덕에 묘를 조성했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하여 사도세자의 시호를 장헌으로 올리고, 묘를 격상하여 영우원으로 봉원하였다. 사도세자의 묘는 1789년(정조 13년) 윤 10월 7일(양력 11월 23일)에 경기도 화성(당시 화산)으로 이장하고 원호를 현릉원으로 바꾸었다. 원래 영우원이 있던 자리에는 배봉진을 설치하여 터를 보호했다.

1968년 동대문구 휘경동 29-1번지의 서울위생병원(현재의 삼육서울병원) 뒷산의 간호학교 신축부지 공사 중 돌상자 두 개가 발견되었다. 이 때 발굴된 여러 부장품 중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묘지에 죽은 사람의 덕이나 공로 따위를 새겨넣은 글'인 묘지명이 기록된 다섯 점의 청화백자가 나왔다. 1789년 사도세자의 묘를 이장할 때, 영우원에서 발굴한 이 묘지명에 영조가 세도세자를 죽인 이유에 대해 죽일 수 밖에 없었다는 변명이 쓰여 있어 아들 정조는 기분이 상하였고, 영우원의 폐기된 묘에 이 묘지명을 파묻고 덮어버렸다. 이 묘비명을 서울위생병원 공사 중 발굴하여 영우원이 동대문구 배봉산 인근에 있었음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영우원 터에는 현재 삼육서울병원 본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현재 표지석은 실제 영우원 터의 위치가 아닌 인근 배봉산 둘레길에 위치해있다. 배봉산 히어리광장 앞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향하면 배봉산 둘레길이 있고, 둘레길을 걷다보면 영우원 터가 있었음을 알리는 표지석을 마주칠 수 있다. 배봉산의 '배봉'이라는 명칭은 정조가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방향으로 절을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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