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설동 경마장

한국 경마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에 시작되었다. 최초의 경마 시행체인 조선 경마구락부가 1922년 4월 설립되었다.
1922년, 서울에 조선 경마구락부가 발족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경마 시행체가 등장하였다. 그 해 5월 경마가 시행된 것이 근대 경마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겠다(참고: 렛츠런뉴스, 농민신문).

1925년 여름, 폭우로 용산구 이촌동 경마장 대부분의 시설물이 유실되었다. 이에 조선경마구락부는 신설동 일대 5만여 평을 경마장 부지로 확보하였다. 신설동 부지는 수해의 우려가 적고, 동대문 인근으로 교통이 편리하여 접근성이 용이하며, 동양척식회사 소유의 토지로 확보가 용이한 부지였기 때문이다(참고: 네이버 블로그 말박물관).

신설동 경마장은 1927년 가을 착공에 돌입했다. 1,200m의 주로와 목조 2층 관람대, 단층 투표장, 150두 수용 규모의 마사 5동의 시설을 구비하였다. 또한 관람대 중앙에는 3층에 이르는 귀빈실을 마련하고, 사무실, 식당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었다. 신설동 경마장은 1928년 9월 20일 개장하여 광복 이후에는 하루 입장객이 4천명을 넘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다. 신설동 경마장의 개장 이후 지방에서도 법인 경마구락부가 생겨나며 근대적인 경마가 시작되는 토대가 만들어졌다(참고: 렛츠런뉴스, 네이버 블로그 말박물관).

신설동 경마장을 찾은 유명인사로는 백범 김구 선생이 있다. 김구 선생은 주말이면 거의 빠지지 않고 경마장을 찾았다고 한다. 김구의 잦은 경마장 방문에는 사연이 있었다. 김구는 광복을 미처 보지 못하고 중국에서 세상을 떠난 모친의 유골을 1946년 정릉 뒷산에 안장했다. 경마장의 기수들은 이 때 기마의장대로써 유골을 호송해 주었다고 한다. 김구가 경마를 즐기기도 했지만, 경마장 기수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경마장을 자주 찾은 것이다. 또한 경마장에 경마가 있는 날에 이승만 대통령, 미 군정 사령관인 존 하지 중장 등의 유명 인사가 방문하여 즉석으로 상장이나, 트로피를 수여하는 경기를 진행하기도 했다(참고: 렛츠런뉴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으로 한국 경마의 태동기가 저물게 된다. 1951년 서울 재탈환 후, 서울 신설동 경마장은 미국 공군의 비행장으로 징발되었다. 경마장의 주축인 말과 경마 종사자도 전쟁으로 인해 모두 흩어졌다. 근대 경마의 역사를 이끌던 신설동 경마장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그 막을 내렸다(참고: 렛츠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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