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미주아파트

청량리 미주아파트단지는 1977년 8월 10일 착공, 9월 분양을 거쳐 1978년 9월에 1,089가구가 입주하였다. 당초 계획은 28~64평형 1,161가구로 동산병원(現 한림대 치과 캠퍼스)을 중심으로 동쪽에 4개동, 서쪽에 5개동을, 남쪽으로는 5층 규모의 상가2개동을 계획하였으나, 28~56평형 1,089가구로 총 8개동으로 변경되어 완공하였다. 또한 단지 내 대지 6,561㎡는 제기동에 이르는 너비 15m의 단지 내 도로도 신설되었다.

1970년대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면서 중산층이 늘어남에 따라 아파트에 대한 수요는 급증하게 된다. 1971년 6월 21일 자 <매일경제> ‘청량리를 부도심으로, 동부서울 종합계획 시사’에 따르면, 정부는 청량리 일대를 동부 서울의 부도심으로 조성하고자 하는 계획을 발표한다. 그 내용은 서울사대부고 대지 2만 5천 평을 평당 7만2천원의 총 18억 원에 매입하여 매머드급 백화점, 상가아파트, 시외버스터미널, 공원 등을 건립하고 당시 공사 중이었던 지하철 1호선과 연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계획은 무산되고, 1970년 중반 주택건설에 뛰어든 민간주택개발업체인 라이트 주택개발(주)에서 1977년 구 사대부고 자리의 대지 2만 3천 평을 34억여 원에 매입하여 상가와 아파트단지를 건립하였다. 이것이 현재의 청량리 미주상가와 미주아파트단지이다.(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원래 현 청량리 미주아파트는 1924년에 경성제국대학 예과가 들어섰던 곳이다. 경성제대 예과는 1923년 5월 당시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청량리 영휘원과 청량리역 사이의 부지에 착공되었다. 이곳은 송림이 울창한 피서지였던 곳이었으며, 1899년부터 종로통에서 전차(동대문-청량리)가 운행되었으며, 경원선의 출발지로서 교통이 편리했다. 1960년대 초에 이곳이 비워지면서 주변에 집들이 들어섰으나 1970년대 초에 라이프 그룹이 이곳을 사서 미주 아파트를 지었다.(출처: 일제시기 학교건축도면 콘텐츠)

청량리 일대는 꾸준히 도시주거지 건설의 실험 대상지였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대표성을 지닌 계층이 정주해 왔던 공간이 아닌 주택정책에 따라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시민아파트부터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청량리 미주아파트단지까지 건설되어 혼성적 성격을 지닌다.(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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