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구의 근대를 걷다

1960~70년대는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근대화, 산업화를 거친 시기로, 동대문구 안에서도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1970년부터는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을 희망하던 국민의 요구와 ‘조국근대화’를 추진하던 국가의 의지가 결합 ‘새마을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다.

청량리 일대는 꾸준히 도시주거지 건설의 실험 대상지였기 때문에 주택정책에 따라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시민아파트부터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청량리 미주아파트단지까지 건설되어 혼성적 성격을 지녔다. 1950년대 만들어진 대표적인 연립형 주거단지인 홍릉주택, 1960년대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호화주택 홍파맨션, 1970년대 고도의 경제성장 시기 지어진 미주아파트는 청량리의 근대 역사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근대 주거사를 알 수 있는 주거단지이다.

청계천 고가도로는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고속성장과 근대화를 상징하는 시설물 가운데 하나이다. 2006년 청계천 고가도로의 철거 후 존치된 세 개의 교각은 대한민국 근대화와 수도 서울의 발전상을 담고 있는 상징적 시설물로 보존 가치가 높다.

홍릉주택부터 청계천 고가도로 존치기념물까지, 근대의 주거단지와 상징적 시설물을 접하면서 동대문구가 겪은 근대화 과정을 알아보자.ㅊ

홍릉 부흥주택

세종대왕 기념공원과 한신아파트 사이에 낡고 오래된 주택가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주변지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상당히 이채롭다. 이곳이 홍릉 부흥주택으로 격동의 세월을 거치면서도 50년 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어 60년대의 향수를 느껴볼 수 있다(출처: 동대문구의 오늘, 과거 그리고 미래와 만나다). 홍릉 부흥주택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7년 원조물자를 받아 지어진 대규모 주거단지이다. 이곳은 청량리의 근대 역사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홍파맨션아파트

1960년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중산층이 등장하면서, 아파트를 근대적 주거생활을 위한 공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시민아파트와 병행하여 주상복합형 상가아파트들이 건설되었다. 민간건설업자를 내세워 중산층에 속하는 상인들을 대상으로 세운상가아파트 · 청량리 대왕아파트 · 낙원상가아파트 등이 건설되었다. 청량리 대왕아파트는 주상복합으로 주거공간은 세대평형 26~54형으로 21세대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1972년 8월 7일 화재로…

청량리 미주아파트

청량리 미주아파트단지는 1977년 8월 10일 착공, 9월 분양을 거쳐 1978년 9월에 1,089가구가 입주하였다. 당초 계획은 28~64평형 1,161가구로 동산병원(現 한림대 치과 캠퍼스)을 중심으로 동쪽에 4개동, 서쪽에 5개동을, 남쪽으로는 5층 규모의 상가2개동을 계획하였으나, 28~56평형 1,089가구로 총 8개동으로 변경되어 완공하였다. 또한 단지 내 대지 6,561㎡는 제기동에 이르는 너비 15m의 단지 내 도로도 신설되었다.…

동대문구의 새마을운동

새마을운동은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가 함축하고 있듯이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을 희망하던 국민의 요구와 ‘조국근대화’를 추진하던 국가의 의지가 결합된 ‘잘 살기 위한 운동’이었다. 1970년에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해방과 분단,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유산들이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산물이었다. 새마을운동의 태동배경은 첫째, 1960년 5·16을 통해 집권에 성공한 박정희 체제는 국민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얻고 국가 통치의 안정적인 기반을…

청계천 고가도로 존치기념물

청계천 고가도로 존치기념물은 2006년 8월 청계천 고가도로를 철거할 때 남겨둔 교각 중 일부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용두동 일대 비우당교와 무학교 사이에 소재한다. 청계천 고가도로 존치기념물로 남겨진 교각은 모두 세 개이다. 청계천 고가도로는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고속성장과 근대화를 상징하는 시설물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 자가용의 보급으로 차량이 급격히 늘어나고, 고가도로 주변 각종 도매상가의 상하차작업 차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