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인지문

흥인지문(興仁之門)은 조선시대 수도였던 한양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성곽의 8개 문 중 동쪽에 위치했던 동대문을 일컫는다. 조선 태조 5년(1396) 도성을 축조할 때 건립되었으며, 단종 원년(1453)에 고쳐 지었고 현재의 흥인지문은 고종 6년(1869)에 다시 지은 것이다. 성곽의 사대문에는 각각 인(仁)·의(義)·예(禮)·지(智) 한 글자를 넣어 작명했는데, 그 중 동대문은 인(仁)자를 넣어 흥인문(興仁門)이라 이름을 붙였다. 동대문의 편액(글씨를 써 문 위에 거는 현판)이 3글자의 흥인문이 아닌 4글자의 흥인지문인 이유는 한양 동쪽이 다른 삼면에 비해 물이 흘러나가므로 토대가 낮고, 땅의 기운이 약하기 때문에 이를 북돋운다는 의미에서 산맥을 뜻하는 지(之) 한 글자를 더해 네 글자로 이름을 덧붙여 지었기 때문이다. 현판의 글씨는 퇴계 이황이 쓴 것이다. 도성의 8개 성문 중 유일하게 옹성을 갖추고 있으며,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흥인지문은 '동대문'이라는 이름과 달리 동대문구가 아닌 종로구에 위치한다. 구(區)제를 처음 시작하던 일제강점기 1943년, 동대문을 기준으로 동대문 안쪽은 종로구, 바깥쪽은 동대문구로 명명하였다. 동대문구는 광복 이후 이북의 이주민들이 모여들어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한 반면, 종로구는 도심공동화로 인해 상주 인구가 줄어들었다. 결국 동대문구와 동대문이 만나는 지점인 동대문구 창신동과 숭인동을 종로구로 편입시켰고, 동대문과 동대문구는 행정상으로 별개의 지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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