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파맨션아파트
Text
1960년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중산층이 등장하면서, 아파트를 근대적 주거생활을 위한 공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시민아파트와 병행하여 주상복합형 상가아파트들이 건설되었다. 민간건설업자를 내세워 중산층에 속하는 상인들을 대상으로 세운상가아파트 · 청량리 대왕아파트 · 낙원상가아파트 등이 건설되었다. 청량리 대왕아파트는 주상복합으로 주거공간은 세대평형 26~54형으로 21세대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1972년 8월 7일 화재로 소실되었다.
한편 "시민아파트 · 상가아파트"와 구별되는 "맨션아파트"가 1960년 중반부터 중산층 주거로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호화스러운' 주택을 의미했다. 염재선은 『주택』 제26호(1970.12) 「아파트실태조사분석」 에서 아파트를 건설업체에 따라 주택공사아파트 · 민영일반아파트, 대상계층에 따라 공무원아파트 · 상가아파트 · 맨션아파트 · 시민아파트 · 시중산층아파트로 구분하고 있다. 이들의 세대평수를 보면 맨션아파트가 얼마나 호화주택이었는지 알 수 있다.
"맨션"이라는 용어는 '한강맨션'의 성공적인 분양 이후 아파트의 한 유형으로, 주로 민간건설회사가 상업적으로 사용했다. 민간에서 건설한 제기동 홍파맨션아파트 또한 당시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호화주택이었다.
청량리 일대는 서울 다른 지역에 비해 교통이 편리하여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으며, 많은 인구가 정주하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1970년 당시 청량리 일대는 도시한옥 등 집장사집이 즐비해 있어 아파트는 산등성이에 위치한 시민아파트, 청량리역 대왕아파트가 전부였다. 1970년대 초반 민간 건설회사들에게 "맨션"이라는 용어가 유행할 당시, 청량리 일대에도 한 개인에 의해 "맨션아파트"가 등장한 것이었다. 1971년 10월 장홍식이라는 한 개인이 제기동 120-10번지 일대에 건설한 홍파맨션은 6층 규모의 1동으로 39m²에서 92m²에 이르는 다양한 평면의 총 38세대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 천막촌과 판자집이 즐비해 있던 제기동에 2~3개의 방 · 거실 · 주방 · 화장실로 계획된 최신 설비의 홍파맨션은 호화주택으로 우뚝 솟아 있었다. 1970년대 초 건설된 다른 지역의 아파트단지를 보면 공급할 당시 주변의 도시기반시설 · 상업공간이 없었던 상황에서 주로 상가를 주거동과 함께 계획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홍파맨션 또한 경계도로에 인접한 주거동 하부에 상가를 배치하였다. 그리고 그 외에 주민편의시설로 지하층에 주차장과 주민공동시설이 배치되었다(출처: 서울역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