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구의 새마을운동

새마을운동은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가 함축하고 있듯이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을 희망하던 국민의 요구와 ‘조국근대화’를 추진하던 국가의 의지가 결합된 ‘잘 살기 위한 운동’이었다. 1970년에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해방과 분단,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유산들이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산물이었다. 새마을운동의 태동배경은 첫째, 1960년 5·16을 통해 집권에 성공한 박정희 체제는 국민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얻고 국가 통치의 안정적인…

성냥갑으로 보는 동대문구의 옛 가게들

70년대를 겪어온 사람들은 별걸 다 모았습니다. 당시는 신사들이 담배를 피면 라이터는 필수였습니다. 그것도 지포. 가스라이터 등 다양한 라이터가 남자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었죠. 만년필과 더블어 좋은 라이터는 남자에게 주는 선물로 최고로 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라이터가 수요가 많았고 지금같이 1회용 라이터가 없던 시절이라서 많은 업소나 가계에서 성냥을 만들어 업소의 안내나 특징을 담아서 홍보용으로 님들에게 아주 골고루 나눠주었습니다. …

조선문단 터

1924년 2월, 동대문구 용두동 168-1(당시 고양군 숭인면 용두리 168-1)에서는 제1회 조선문단 합평회가 열렸다. 합평회는 여러 문인들이 모여 서로의 작품을 비평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이다. 이 합평회에는 이광수, 현진건, 김억, 박종화, 방인근, 최서해, 나도향, 염상섭이 참여했다. 1호선 제기역 1번 출구에서 20분을 걸어 도착하는 조선문단 터에는 현재 솔바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솔바람공원은 아파트를 지으며 공공 부지로…

회기동 마을활력소 회기한지붕

회기한지붕은 동대문구에 첫 번째로 조성된 마을활력소다. 회기치안센터가 이전하면서 공실로 된 공간을 새롭게 리모델링해 주민들에게 돌려주었다. 지상 3층 규모로 건립됐으며 1층은 북카페, 2층은 세미나실, 어린이놀이방 3층은 운영 사무실 및 회의실이 자리 잡았다. 주민 누구나 각종 회의, 모임, 강의 등 목적으로 대관할 수 있다. 신청은 서울시공공서비스예약 홈페이지 (http://yeyak.seoul.go.kr) 에서 가능하다. 회기한지붕은…

중랑천 벚꽃길 북카페

중랑천 장평교 주변에 위치한 '벚꽃길 북카페'가 바쁜 도시 생활 속에서 여유를 즐기고자 하는 구민들이 중랑천변에서 내 집 서재와 같이 편안하게 차 한 잔과 독서를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됐다. 북카페는 총 2,000여 권의 도서와 60석의 좌석을 갖췄으며, 중랑천변을 조망하며 독서와 휴식을 즐길 수 있어 온가족이 함께 주말 나들이 공간으로 이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특히 봄 벚꽃 개화 기간에는 아름답게 핀 벚꽃 아래서 중랑천변의 시원한…

선농단

선농단은 조선과 중국에서 농본 정책의 하나로 국가에서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를 주신(主神)으로 모시고 풍년들기를 기원하던 제단을 말한다. 신농씨는 중국 설화 속의 3황(皇) 중 하나다. 3황은 일반적으로 복희씨(伏羲氏)·신농씨(神農氏)·여와씨(女媧氏)를 말하는데 여와씨는 인간을 창조하였고 복희씨는 사람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전수해 주었으며 신농씨는 바로 농사 짓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후직은 중국 전설에서 요임금의…

천주교 이문동 성당

동대문구 이문동 321-31번지에 위치한 이문동 성당은 2012년 50주년을 맞이했다. 1955년 제기동 본당 성당으로부터 분가한 청량리 본당은 청량리를 비롯해 전농동, 휘경동, 이문동, 회기동, 답십리, 제기동 일부와 경기도 일원 공소신자들로 구성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청량리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주민 수가 급속히 증가하였는데 대개는 시골에서 상경한 가난한 사람들로서 일정한 직업도 없이 막노동으로 생계를…

답십리 촬영소 영화전시관

장안동에는 ‘답십리 촬영소’ 또는 ‘촬영소 사거리’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현재는 사라지고 없지만 1960년대 그곳에 ‘답십리 촬영소’라고 불리던 영화종합촬영소가 있었다. 답십리 촬영소의 정식 명칭은 ‘대한연합영화주식회사’이다. 예비역 헌병 대령이던 홍의선·전옥숙 부부가 ‘영화산업의 육성’을 외치며 사재를 털어 1964년 3월 동대문구 답십리동 산 12번지(현 동대문구 체육관과 동답초등학교 일대)에 지은 것이다. 스튜디오 2개와…

서울풍물시장

서울풍물시장은 이전에는 ‘황학동(黃鶴洞) 벼룩시장’이라고 불렸던 바로 그 시장이다. ‘황학동’이라는 이름은 과거 논밭이었던 이곳에 황학이 날아와 새끼를 치고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청계천과 함께 하면서 일제강점기부터 빈민 계층의 거주와 생계 유지를 위해 형성되었던 이 시장은 장소가 지닌 상징적·역사적 의미에 따라 명칭도 다양했다. 전국을 벼룩 뛰듯 돌아다니며 희귀한 물건을 모아온다거나 물건에서 벼룩이 금방이라도 기어나올 것 같다는…

미도파백화점 청량리점

1978년 10월12일 미도파백화점 청량리점이 전관 개점됐다. 당시 이곳은 1976년 6월10일부터 개점한 가고파백화점이 영업하다 도산하자 1978년 2월14일 미도파백화점이 총 26억9천6백11만6천원으로 건물과 대지를 인수했다. 가고파를 인수한 미도파는 8개월간 개수공사를 하여 1978년 9월 일부를 개점했고 10월12일 2,3,4층 전관을 개점한 것이다. 지하 1,2층은 대형수입상품 매장, 1층 잡화, 화장품 2,3층은 의류매장, 4층은…

서울대학교 용두동 캠퍼스

1호선 제기동역을 나서서 선농단으로 향하는 길 초입에 들어서면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터'라는 문구가 적힌 표지석이 등장한다. 서울대학교 로고와 함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이 1954년 12월부터 1975년 2월까지 이 곳에 있었음을 알리고 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이 있던 서울대학교 용두동 캠퍼스는 1975년까지 용두동 138-61번지에 머물렀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은 해방 후 경성사범학교와 경성여자사범학교가 국립 서울대학교로 통합…

떡전교

현재 서울시립대학교가 위치한 전농동에서 정신병원이 있는 청량리 쪽으로 넘어 가려면 시멘트다리를 넘어야 하는데 이 다리를 가리켜 '떡전교' 또는 '떡전다리'라 부른다. 예전에 그 주위에 떡을 만들어 파는 떡집이 많아 사람들이 그곳을 떡점(餠店)거리, 또는 떡전거리라 한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지금은 중앙선, 경춘선, 경원선으로 가는 기차와 전철이 떡전다리 밑을 지나지만 현대적인 교통수단이 발달하기 휠씬 전인 예전에는 사람들이 주로 걸어다녔고…

답십리 고미술상가

답십리역에서 1번이나 2번 출구 쪽으로 나오면 큰 길가 빛 바랜 건물들 너머로 고미술품 상가 건물들이 보인다. 2동, 5동, 6동이라고 벽에 쓰인 커다란 주상 복합 건물이 바로 그것이다. 답십리 고미술품 상가는 전국 최대의 고미술품 판매장이다. 답십리 고미술품 상가에서는 국내 최대라는 명성에 걸맞게 고서화·도자기 등 문화재라 할 만한 미술품에서부터 선조들이 사용하던 일상 용품까지 우리 고미술의 모든 것들을 두루 만날 수 있다.…

휘경동 종합 구판장

1982년 1월 20일, 동대문구 휘경동 108-4번지에 휘경동 종합 구판장이 문을 열었다. 휘경동 종합 구판장은 1981년 7월 16일에 개장한 종로구 모악동 종합 구판장 등 6개 구판장에 이어 증설된 10곳의 종합 구판장에 속한다. 휘경동 종합 구판장은 현재는 사라져 기록으로만 남아 있다. 시민들의 생필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저소득층 가구가 다수 주거 중이며 동네 가까이에 시장이 없는 변두리 6개 지역에 설치된 종합 구판장 6개소는…

홍파맨션아파트

1960년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중산층이 등장하면서, 아파트를 근대적 주거생활을 위한 공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시민아파트와 병행하여 주상복합형 상가아파트들이 건설되었다. 민간건설업자를 내세워 중산층에 속하는 상인들을 대사으로 세운상가아파트 · 청량리 대왕아파트 · 낙원상가아파트 등이 건설되었다. 청량리 대왕아파트는 주상복합으로 주거공간은 세대평형 26~54형으로 21세대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1972년 8월 7일 화재로…

홍릉 부흥주택

세종대왕 기념공원과 한신아파트 사이에 낡고 오래된 주택가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주변지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상당히 이채롭다. 이곳이 홍릉 부흥주택으로 격동의 세월을 거치면서도 50년 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어 60년대의 향수를 느껴볼 수 있다(출처: 동대문구의 오늘, 과거 그리고 미래와 만나다). 홍릉 부흥주택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7년 원조물자를 받아 지어진 대규모 주거단지이다. 이곳은 청량리의 근대 역사와 더불어…

청량리역 검수차고

청량리역 검수차고는 동대문구 전농동, 청량리역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건축물이다. 2006년 9월 19일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 제269호로 지정되었다. 1938년에 건립되어 청량리역의 전차대를 거쳐 기관차를 수리 및 보관하는 차고로 사용된 건물로 총 27칸이며, 반원형의 방사상으로 배열된 형태였으나 차량의 방향을 돌리는 턴테이블과 차고 다수가 철거되어 현재는 차고 3칸만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 철도건축사에서 유일하게 보여지는 철도차량…

시립 청량리실비식당

1964년 8월 25일, 영세근로자를 위한 실비(實費)식당 '시립 청량리 실비식당'이 청량리에 문을 열었다. 개소 당시 촬영된 3장의 사진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식사 중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실비(實費)식당'은 저렴한 가격을 받고 파는 식당이라는 의미이다. 1960년대 정부는 근로자를 위해 남대문, 동대문, 종로 등 시내 곳곳에 시립실비식당을 운영해 단돈 50환으로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에 배부르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시립아동상담치료센터

동대문구 장안동에 위치한 시립아동상담치료센터는 문제행동 아동과 학대피해아동의 일시적인 보호 및 다각적인 방법을 통한 임상치료를 도모하는 기관이다. 비행아동 및 청소년, 피학대 아동 및 청소년, 학교부적응 아동 및 청소년, 기타 심리치료가 필요한 청소년 등이 이용할 수 있으며 이용료는 무료다. 시립아동상담치료센터는 서울시에서 샬르트 성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천주교 쌘뽈수도원 유지재단)에 위탁 운영하도록 하여 1988년 4월 13년…

성동역

지금은 제기동 한솔동의보감 빌딩(구 미도파) 앞에 표지석만 남아있는 ‘성동역’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해 하겠지만, 1970년 이전의 사람들은 아련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장소이다. 성동역은 비록 1971년 10월 서울의 시가지확장 계획에 따라 역이 폐쇄되어 현재에 이르렀지만, 당시 경춘선 시·종착역으로 인해 현재 서울약령시, 경동시장 등이 형성되어 서울 최대 재래시장으로 발돋음할 수 있었다. 경춘선은 예나 지금이나 경관이 좋아…

동대문구 체육관

2004년 10월 처음으로 문을 연 동대문구 체육관은 동대문구 답십리동 '촬영소 고개' 동답초등학교에 자리잡고 있다. 동북부 서울의 체육요람을 꿈꾸는 동대문구 체육관은 2002년 5월 첫 삽을 떠 2년반 만에야 지하1층, 지상 2.5층짜리로 탄생했다. 동대문구 체육관은 대지 5746㎡(1738평), 건평 5743㎡(1737평) 규모다. 특히 평소에는 경기장을 넓게 쓰다가 필요하면 자동으로 좌석이 펼쳐지는 전동 관람석이 눈길을…

동대문구 구민회관

동대문구 구민회관은 1989년 2월 14일 준공되어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사업비 12억 1천만원을 들여 지어진 구민회관은 지하1층, 지상4층 규모로 체육관·목욕실·강당·홍보전시실·상담실·취미강의실·독서실 등을 갖추고 있다(출처: 중앙일보). 동대문구에는 각종 공연장, 문화의 집, 전시관, 영화관, 도서관, 사회복지관 등을 비롯하여 지역문화예술의 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동대문문화원, 동대문구 문화회관 등의 문화시설이 있다. 구민회관 내…

답십리 굴다리

답십리 굴다리는 동대문구 청량리와 답십리를 연결짓는 지하차도이다. 행정 구역 상으로는 동대문구 전농동에 위치한다. 답십리 굴다리는 반백년의 역사를 함께하며 동대문구 주민들의 일상에 자리잡고 있다. 답십리 굴다리는 1966월 10일 착공되었으며 1967년 6월 1일 개통되었다. 답십리 굴다리 준공에는 1천4백50만원의 예산이 들었으며, 개통 당시 폭은 6.5미터, 길이는 15미터였다. 이후 청량리역 부근 답십리길의 고질적인 상습정체를…

동대문구의 옛 극장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 동대문구에는 오스카극장, 대왕극장, 답십리극장 등 여러 극장이 개관한다. 이는 해방과 6.25를 겪으면서 가난과 절망에 지친 사람들에 간절한 희망과 영화의 대중적인 보급에 힘입어 극장이 함께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1990년도에 들어서면서 재개발과 새로운 시설의 영화관들이 들어서면서부터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시설 노후로 대부분의 극장은 문 닫게 된다. 다양한 영화 중 한 편을 골라보며 쇼핑을 즐길…

용두동 후생주택

1950년대 한국 전쟁 직후 정부는 전쟁으로 파괴된 수도 서울을 재건하기 위해 힘을 쏟았다. 한강 다리를 다시 짓고 주택과를 신설하여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전쟁으로 인한 재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한 수용시설과 월동용 간이주택, 그리고 후생주택과 복구농민주택, 수복지구 간이주택으로 총 82,658호를 건설하였다. 이는 이 기간에 건설된 총 216,344호의 주택 중 38.4%에 해당한다(출처: 국가기록원). 후생주택은 주택난을 해소하기…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전쟁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1950년대, 김흥배 박사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조국이 풍요로워지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을 교육시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인재로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흥배 박사의 이러한 생각과 정부의 의견이 합쳐져 1952년 문교부로부터 설립 허가를 받아 대학 설립을 위한 재단법인 ‘한국육영회’가 설립된다. 마침내 한국외국어대학교는 국내 최초의 외국어 전문 고등 교육기관으로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경희대학교

경희대학교는 1949년 설립된 사립대학이다. 서울, 국제, 광릉의 3개 캠퍼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 서울캠퍼스는 동대문구 경희대로 26번지에 위치해있다. 경희대학교의 모체는 1949년 설립을 인가 받은 2년제의 신흥초급대학이다. 1951년 6.25전쟁의 여파로 재정난에 시달리던 재단을 조영식 박사가1,500만 원의 부채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인수하였다. 다음 해인 1952년 재단을 확충하고 교육법에 의한 정규 신흥초급대학으로 정식…

서울시립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는 1918년 경성농업학교로 개교한 이래 적지 않은 굴곡과 변천을 겪어 왔다. 일제 치하인 1918년 농업학교로 출발한 본교는 광복 이후에도 농업중고등학교로 유지되어 왔으나, 이어 고등교육에 대한 수요의 증대에 따라 농업초급대학, 4년제 농업대학 등으로 변모하였다. 그리고 변천하는 시대의 조류에 발맞추어 산업대학으로 그 체제를 일신하였고, 이어 시립대학으로 교명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된지도…

대왕코너

해방 이후 청량리역은 전면의 전차 정류소가 자리했고, 배후에는 강원도에서 생산된 석탄이 모여드는 대규모 집하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이른바 ‘불량주택’이 난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1960년대 들어서 청량리에도 변화의 조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1963년 서울시는 시내 주요 간선도로 주변의 ‘건물개량지구’를 대상으로 종합적인 시가지 건축을 꾀하고자 했다. 불량건설 개량지구 중 청량리역이 위치한 청량리동도…

배봉산 둘레길

2018년 10월, 동대문구의 유일한 녹지 공간인 배봉산에 4.5km 코스의 둘레순환길이 열렸다. 배봉산 둘레길은 출발과 도착지점이 같은 순환형 등산로로 지난 2013년부터 조성을 추진하여 오년만에 완공되었다. 배봉산은 동대문구 전농동과 휘경동에 걸쳐져 있는 해발 108m 높이의 산이다. 높이가 그리 높지 않아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어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도시 숲 산책로이다. ‘배봉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배봉산…

중랑천

한강의 제1지류인 중랑천은 청계천, 우이천 등 열세개의 지류를 거느리고 있는 길이 36.5km, 평균폭 8.61km의 하천이다. 경기도 양주시 산곡동의 수락산 북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의정부시를 거쳐, 북한산에서 발원한 우이천과 합류한 뒤 하류의 청계천과 합류하여 한강 본류에 유입된다. 경기도 구역의 중랑천은 대한민국의 지방하천으로 분류하며, 서울특별시 구역의 중랑천은 국가하천으로 같은 중랑천임에도 등급이 다르다. 옛 중랑천은…

홍릉수목원

동대문구 회기로 57번지에 위치한 홍릉수목원은 1922년 홍릉터 자리에 임업시험장이 개설되면서 전국 각지의 종자·묘목을 모아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원이다. 임업연구원의 부속 전문 수목원으로 국내외의 다양한 식물유전자원 2015년 기준 총 2,035종을 체계적으로 수집·관리하여 기초식물 학문분야 발전은 물론 식물유전자원 확보를 위해 조성한 시험 연구림이다 (출처: 동대문구청). 한국전쟁 중에는 한국 대부분의 수목원이 파괴되었으나…

왕산로

1895년 가을, 일본 세력의 경복궁 습격으로 명성황후가 살해된다. 경상도 선산에서 학문에 전념하던 왕산 허위는 이 사건에 분노하여 전국 곳곳에 창의문(倡義文)을 써 붙여 의병을 모으기 시작하여 을미의병의 한 주축을 이루었다. 금산(현재의 김해)에서 이기찬과 함께 삼백여명의 의병을 모은 허위는 금산의 관군 무기고를 습격하여 금산을 점령하고 한양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삼백명의 급조된 의병으로 천 이백명의 관군을 맞아 싸우는 것은…

하정로

하정로(夏亭路) 하정로는 조선 초기 개국공신이자 청백리로 유명한 하정공 유관선생의 정신이 깃든 뜻깊은 도로입니다. 비우당교와 우산각이 인접하고 하정 유관선생의 청렴한 정신을 이어받은 하정로는 서울시에서는 ‘하정 청백리상’을 동대문구에서는 신규 공무원들이 ‘청렴길 걷기’ 코스로 그 뜻을 기리는 등 청렴 동대문구가 가는 길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2016. 4. 29. 동대문구청장 하정로(夏亭路)는 동대문구 신설동 로터리에서 답십리…

제기동 한옥 골목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한국에는 ‘도시 한옥’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도시 한옥’은 대형 필지를 분할하거나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진행된 뒤 새로 만들어진 주거지에 집단적으로 건설된 한옥이다. 제기동의 도시한옥은 1940년 3월 14일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실시하면서 형성된 지역의 일부로 격자형 가로와 세로로 정형화된 필지로 구획된 택지가 형성된 후 도시형 한옥이 건립되기 시작하여 형성되었다. 제기동 한옥 골목의 도시한옥은 도시 한옥 건설의…

천주교 제기동 성당

천주교는 한문으로 번역되고 저술된 천주교 서적을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고, 이를 학문으로 연구하던 남인 학자들 사이에 천주교 신앙이 싹텄다. 그러나 이후 한국 천주교회는 1801년 신유박해를 비롯한 크고 작은 박해로 혹독한 시련의 시기를 지내야 했다. 하지만 신앙의 선조들은 이러한 시련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복음을 전파하는 한편, 늘어가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돌볼 성직자를 맞아들이고자 쉼 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마침내 1831년 9월 9일,…

깡통시장

청량리역 환승센터에서 10분, 청량리 청과물 도매시장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하는 청량종합도매시장 일명 ‘깡통시장’은 국내 최대 규모의 식료품 및 잡화 도매 시장이다. 1970년대에 들어 경동시장 상인들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상점이 하나 둘 생겨났다. 1980년대 초부터는 가게의 숫자가 점차 늘어나 하나의 시장이 형성됐고, 상품을 싸게 판다는 이유로 깡통시장이란 이름이 붙었다. 깡통시장에서는 온갖 식료품을 비롯한 많은 상품을…

청량리청과물시장

청량리청과물시장은 동대문구 왕산로33길 4번지에 위치한 청과물 도, 소매 전문 재래시장이다. 1958년부터 경기도와 강원도의 농민들이 청량리역을 통해 농산물을 들여와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되었다. 청량리의 재래시장은 현재 청과물시장, 전통시장, 종합시장으로 나뉘었으며 청과물시장이 가장 규모가 크고 방문자 수가 많다. 청량리 청과물시장은 전국 각지에서 들여온 청과물을 판매하는 시장으로 명성이 높다. 한때 환경문제, 교통문제로…

경동시장

대한민국 전통시장을 대표하는 경동시장은 1960년에 개설되었으며 농산물의 도매업이나 소매업의 직거래 유통을 하고 있으며, 고추 · 마늘 · 채소와 도라지 · 산나물 등 산야 채취의 특산물을 주로 취급한다. 규모는 허가관리 면적 약 1만㎡이다. 6.25 전쟁 이후 서울 사람들의 생활이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경기도 북부 일원과 강원도 일대의 농민들이 생산 · 채취해 오는 농산물과 채소 등이 옛 성동역(현 한솔동의보감)과 청량리역을 통하여 몰려들었다.…

서울약령시한의약박물관

서울약령시한의약박물관은 2006년 동대문구에서 설립하고 지난 2017년 현재 위치로 이전하여 재개관한 박물관으로 조선 초기 가난하고 병든 백성들을 돌보던 보제원이 있던 유서 깊은 곳이자 우리나라 최대의 한약 유통 중심지인 서울약령시에 자리하고 있다. 한의약 관련 유물과 350여종의 다양한 약재를 전시하고 있으며 보다 쉽게 한의약을 접할 수 있도록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또한 한방체험을 통해 개개인의 건강한 삶을 위한 생활 맞춤형…

동대문구청

동대문구는 서울의 동쪽에 위치한 동부 서울의 관문으로 전농동 배봉산과 회기동 북쪽 산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해발 100m 이하의 저지대로 동쪽으로는 중랑천, 서쪽으로는 정릉천, 남쪽으로는 청계천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인구 약 35만여명이 거주하는 있는 전형적인 주거 지역이다. 수도서울의 동부에 자리한 동대문구는 그 지역이 도성 4대문의 하나인 동대문(東大門 : 興仁之門의 속칭)밖에 자리한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동대문을 경계로 한 동쪽에…

청량리광장

1911년 청량리역의 철도 운행을 시작으로 청량리역 부근이 교통의 중심지로 떠오르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1939년, 총독부가 주관하는 대형행사인 조선대박람회의 장소로 청량리역 일대가 선정되었다. 조선대박람회는 조선총독부 시정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였다. 조선대박람회는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와 1929년 조선박람회와 달리 총독부가 직접 주최하지 않았다. 그러나 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의 주최에 총독부가 적극 지원하는…

청량리역

동대문구는 예부터 동대문을 통해 서울 안팎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이 오가는 지역이었다. 최초의 전차구간이자 최초의 지하철 종착지이기도 한 청량리역은 동대문구 교통의 중심지로 서울 동쪽의 관문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전차부터 기차, 지하철과 함께 해온 청량리역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산 증인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청량리 일대는 근대 교통기관인 전차가 처음으로 운행을 시작한 곳이다. 1899년 명성황후의 홍릉을 왕래하던 전차는 1911년…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경희대 한의과대학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한의과대학으로 전통적인 민족의학의 맥을 이어가는데 앞장서고 있다. 독창적인 한의학의 체계를 이룩하였으며, 다수의 봉사 활동을 통하여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이바지 하고 있다.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은 1965년에 동양의학대학을 경희대학교 재단에서 합병하면서 출범하였다. 이후 세계 최초로 1971년에 한방병원을 지었으며, 이듬해인 1972년에는 세계 최초로 무통 침구 마취를 통한 맹장 수술을…

서울약령시 한방문화축제

서울약령시는 조선시대(1393-1895) 왕명에 의하여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며 의지할 곳 없는 백성과 병자들에게 치료를 담당하던 구휼기관인 “보제원”이 있었던 유서 깊은 곳으로, 서울특별시로부터 “서울약령시(藥令市)(傳統韓藥市場地域)로 지정 승인되고 제정경제부로부터 2005년 7월 5일자로 서울약령시한방산업특구로 지정 고시된 것을 기념하고 제세구민과 생명존중을 구현하였던 선조들의 위업을 이어가고자 서울시 전역의 저소득층 1,500명을 대상으로…

회기동 벽화골목

경희대학교 정문을 바라보며 오른쪽에 위치한 골목 사이사이에 벽화가 숨어있다. 미술관에서 그림 구경하듯 골목골목 느리게 걸으면서 구경하고 다리가 아프면 중간 중간 위치한 카페에서 차도 마셔보자. (출처: 동대문구청) 회기동 벽화골목은 회기동 주민자치위원회와 경희대학교 미술대학과의 협의를 통해 회기동 골목길을 대상으로 벽화마을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2012년부터 3년간 추진하고 있다.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은 2010년 10월 미술 관련…

보제원

조선시대에 이르러 도로가 발달되면서 원(院)과 역(驛)이 생겼다. 역은 서울인 한양 도성에서 전국의 각 지방에 이르는 30리 길마다 도로가에 설치하여 중앙과 지방간의 문서전달 관문, 공세(貢稅)의 수송, 또는 관료들의 공무여행 때 마필의 잠자리나 먹이 등을 제공하던 곳이었다. 원은 주로 공용여행자의 숙소 및 식사를 제공하기 위하여 역 가까이 설치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서울 근처의 원은 동대문 밖의 보제원, 서대문 밖의 홍제원, 남대문 밖의…

서울약령시

서울약령시는 수천년 역사와 전통 한의약의 명맥을 잇는 전국 최대 규모의 한약재 유통시장이다. 단일 품목으로 활성화된 특수시장 중 대표적인 시장으로 전국 한약재 거래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1960년대 말부터 청량리역과 마장동 시외 버스 터미널의 교통의 편의성 덕분에 전국 각지의 한약재 상인들이 모여 자연적으로 생겨났다. 일제강점기에는 사람과 문물, 정보교류가 활발했기 때문인지 강제로 폐쇄되기도 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며…